‘검색의 역사’ 야후, 빙에도 추월 당해

출처: http://www.zdnet.co.kr/news/news_view.asp?artice_id=20100915081231
저자: 이설영 기자 ronia@zdnet.co.kr
날짜: 2010.09.15

[지디넷코리아]야후가 최초로 미국 검색 시장에서 빙에 추월 당했다.

14일(현지 시간) 닐슨이 발표한 ‘8월 미국 검색 사이트 순위’에 따르면 ‘구글’은 65.1%로 압도적인 1위 자리를 유지했다. 이어 ‘MSN/윈도라이브/빙’이 13.9%의 점유율로 구글의 뒤를 이었으며, 13.1%의 야후가 3위를 차지했다.
야후가 빙에 추월 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야후의 점유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7월의 경우 야후의 점유율은 14.3%였다. 1.2%P 하락한 셈. 전년 동기(16%)와 비교해도 2.9%P 떨어졌다.

반면 빙의 경우 꾸준히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지난해 8월 10.7%에 불과했으나 올 8월에는 13.9%를 기록, 3.2%P 상승했다.

구글이 가진 인터넷 시장 영향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MS)로서는 의미있는 신호로 해석된다. 여전히 검색 시장에서 구글과의 격차가 적지 않지만, 꾸준히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구글의 대항마로서의 빙의 위용이 어느 정도 현실화돼 가고 있다고 보여진다.

반면 야후는 비상이 걸렸다. 최근 잇따라 개인화서비스, 소셜웹서비스 등을 내놓으며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점유율은 계속 하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MS와 야후는 검색 관련 제휴를 체결한 상황이다. 지난해 7월 검색 관련 제휴를 체결했다. 이에 따라 야후는 MS의 빙을 활용할 수 있게 됐으며, MS의 검색 광고 기술을 활용하면서 두 회사의 검색 광고 영업을 맡게 됐다.

[인터넷 사업 성공사례] 야후! 인터넷 비즈니스 역사의 이정표

출처: http://www.linxus.co.kr/main/view_post.asp?post_seq_no=6855
저자: 이종운
날짜:  2003-10-29

스탠포드 대학원생이었던 제리 양(Jerry Yang)과 데이빗 필로(David Filo)는 스탠포드 대학에 할당된 자신들의 조그만 학생 서버 공간에 웹 사이트를 개설하고, WWW에서 방문할만한 사이트를 링크해 주는 ‘북마크(bookmark) 서비스’를 운영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이트들을 정리해 모아두고 소개해 주던 것이 거대 포털 기업 야후의 시초였습니다.

웹 상의 정보, 야후(포털)에서 시작된다

야후의 북마크는 곧 사람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고, 필로와 제리 양은 더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원하는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모든 정보들을 세부적으로 분류한 디렉터리 사이트를 만듭니다. 이런 디렉터리를 기반으로 야후는 사용자가 원하는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는 검색엔진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새너 제이 머큐리 뉴스(San Jose Mercury News)는 야후의 업적을 18세기 생물을 종/속으로 구분하는 최초의 분류 시스템을 만든 스웨덴 식물학자 린네(Linnaeus)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필로와 제리 양은 자신들의 디렉터리 사이트를 바탕으로 1994년 4월 최초의 인터넷 포털(portal) 기업, 야후(Yahoo!)를 설립합니다. 당시 야후는 인터넷 정보를 종합적으로, 그리고 보다 효율적으로 찾게 해주는 “포털(portal)” 사이트의 개념을 창시했습니다. 사용자들은 드넓은 인터넷 공간에서 정보를 찾아 헤맬 필요 없이, 모든 정보가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는 포털 사이트, 야후에서 원하는 정보로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야후 사업의 확장

1996년 4월, IPO로 공개 기업 대열에 들어선 야후는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해, 1997년 온라인 e메일 사이트인 로켓메일(rocketmail.com: 야후 e메일 서비스의 기반이 됨)과, 1999년 커뮤니티(community) 사이트인 지오시티(Geocities)를 인수하면서 사업을 다각화합니다.

지오시티를 인수하면서 커뮤니티 사업에 집중적인 투자를 시작한 야후는 야후를 사람들 ‘생활’의 중심에 서도록 만들었습니다. 야후는 지오시티를 통해 야후 회원들이 웹 상에 자신의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게 했으며, 야후 포토(Yahoo! Photos)를 만들어 회원들끼리 자신의 사진을 올리고 공유할 수 있게 했습니다. 또한 야후 퍼스널(Yahoo! Personals)를 통해 회원들에게 교제 알선 서비스까지 제공하게 됩니다. (야후 퍼스널은 2001년 유료로 전환됩니다.)

1999년 “야후 메신저(Yahoo Messenger)”를 출시하면서 야후는 IM(Instant Messaging) 사업에도 뛰어듭니다. e메일과 메신저, 그리고 2000년 시작된 IP 전화 서비스까지 진출하면서 야후는 인터넷을 이용한 커뮤니케이션 사업에서도 두각을 나타냅니다.

야후는 1999년 브로드캐스트닷컴(broadcast.com)를 비롯한 몇몇 콘텐츠 사이트들을 인수하면서 본격적인 콘텐츠 사업에도 뛰어 듭니다. 야후는 모틀리 풀(Motley Fool), CBS 마켓워치(MarketWatch), 스트리트닷컴(The Street.com)으로부터 금융 주식 정보를, ESPN, 스포팅 뉴스(Sporting News)로부터 스포츠 소식을, e온라인(E!Online)으로부터 연예 오락 정보를 가져 오는 등 수많은 온라인 콘텐츠 업체들과 계약을 맺고 방대한 콘텐츠를 종합 제공합니다.

야후는 업계에서 가장 먼저 맞춤 콘텐츠 서비스를 제공한 포털 사이트이기도 합니다. 야후는 방문객들이 야후에서 제공되는 뉴스, 스포츠, 날씨, 음악, 금융, 건강, 정치, 연예 정보 등의 콘텐츠와 각종 서비스 중 원하는 것들만 골라 페이지를 구성할 수 있는 “마이 야후(My Yahoo)” 서비스를 개설합니다. 마이 페이지는 사용자 각자가 원하는 콘텐츠와 서비스만 골라 놓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색상이나 레이아웃도 취향에 따라 정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죠. 또한, 야훌리건(Yahooligans!)라는 어린이 회원들만을 위한 콘텐츠와 서비스를 따로 마련해 특정 고객 층에 집중한 마케팅을 실시할 수 있었습니다.

야후는 1998년 야후 쇼핑(Yahoo! Shopping)과 야후 옥션(Yahoo! Auctions) 사이트를 개설해 전자상거래 사업에도 뛰어 듭니다. 야후 쇼핑은 웹 기반의 수많은 전자상거래 업체들을 한데 모은 거대한 전자상거래 네트웍이었습니다. (2000년 야후 쇼핑에 입점한 전자상거래 업체 수는 1만 개가 넘어 갑니다.)

야후의 B2B 사업

2000년 6월에는 코퍼레이트 야후(Corporate Yahoo!)라는 기업 포털 사이트를 개설합니다. 코퍼레이트 야후는 마이 야후의 인터페이스에 기반한 맞춤형 기업정보 포탈 솔루션입니다. 이전까지 많은 회사들이 자사 고유의 포탈 사이트를 개발하기 위해 엄청난 돈과 시간을 쏟아 부었지만 대부분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기업 내 직원들이 이용이 불편하다고 외면해 버린 것이죠. 이런 점에 착안해 야후는 기업들이 마치 마이 야후 페이지를 만들듯, 야후에서 쉽게 기업 포털 사이트를 만들어 직원들, 혹은 외부 업체들과 공유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기업의 포탈 사이트 관리자는 코퍼레이트 야후에서 손쉽게 사용자 화면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판매부서 직원들이 야후 사이트에서 아웃룩 캘린더를 보고 바로 주문을 선적할 수 있도록 화면을 구성할 수 있는 것이죠. 기업체가 자사 정보를 마이 야후처럼 간편하게 공유할 수 있게 해준 코퍼레이트 야후는, 기업 포털 서비스라는 새로운 사업 영역을 개척합니다.

이렇게 야후는 e메일, 커뮤니티, 콘텐츠 사업 뿐만 아니라 온라인 쇼핑, 금융, 기업 서비스까지 제공하면서 더 이상 “WWW 정보 접근 및 검색 서비스”가 아닌, 수많은 사업 모델을 운영하는 “글로벌 온라인 미디어” 기업으로 거듭납니다.

“글로벌 온라인 미디어 기업,” 야후는 ‘온라인 포털’ 사업을 재정의하며, 다른 검색엔진 및 디렉터리 회사들의 선례가 됩니다. 알타비스타(AltaVista), 익사이트(Excite), 인포시크(Infoseek), 라이코스(Lycos)와 같은 검색엔진 기업들도 야후처럼 한 사이트에서 모든 종류의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디어 포털 사이트로 발전하게 된 것이죠.

야후의 위기, 광고 중심 수익 모델의 위험성

야후는 안정된 재무 구조를 갖추고 흑자를 내고 있는 몇 안 되는 닷컴 기업 중 하나지만, 2001년까지만 해도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갖추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야후가 광고 수익에 지나치게 의존했다는 점입니다. 2001년 초까지 야후의 광고 수익은 전체 수익 중 90%를 차지할 정도로 광고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이었죠.

그러나 2002년 들어 야후는 광고에 대한 의존도를 크게 줄입니다. 야후는 애인 찾아주는 개인 광고(Yahoo Personals), 구직 페이지(Yahoo Careers), 그리고 여행 중개 페이지(Yahoo Travel)와 같은 유료 서비스를 통해 수익 원을 확충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과거 배너에만 의존하던 광고 수익을 이제는 분류 광고(classified ads)와 검색엔진 타깃 광고, 데이트, 직업 소개 서비스와 같은 다양한 형태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2002년 2/4분기 동안 야후는 214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 수익의 40% 정도를 광고 이외의 서비스에서 올리고 있습니다.

야후, 브랜드 성공전략

무엇보다 야후는 인터넷 사업체로는 최초로 회사의 이름을 전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운 기업이었습니다. 야후는 자사 사이트를 인터넷 사용의 ‘출발점’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사람들의 머리 속에 야후란 이름을 각인 시켜야 했습니다. 1996년부터 야후는 “Do You Yahoo?”라는 마케팅 문구 아래 TV, 인쇄 매체, 길거리, 스티커 등에 야후의 이미지를 널리 퍼뜨리며 대대적인 브랜딩 전략에 나섰습니다. 야후의 공격적인 브랜딩 전략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야후는 오늘날 인터넷에서 가장 유명한 브랜드로 성장합니다.

2000년 시티뱅크가 실시한 전세계 브랜드 가치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기업은 코카 콜라였고, 인터넷 기업 중 가장 ‘비싼’ 브랜드를 가진 야후는 전체 35위였습니다. 하지만 코카 콜라는 전년도 대비 브랜드 가치가 13% 하락한 반면, 야후는 258%나 상승해 큰 대조를 보였습니다. 인터넷에서 가장 성공적인 브랜드를 구축했다는 야후는 이 정도 수준의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겨우 5년이 걸린 셈이죠.

야후의 성공은 인터넷 비즈니스 역사의 커다란 이정표가 됩니다. 인터넷이 확실한 경제 활동의 기반이 되기 위해선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도구’와, 인터넷에서 원하는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출발점’이 필요했습니다. ‘도구’란 바로 넷스케이프가 처음 제공했던 브라우저 소프트웨어였고, ‘출발점’이란 검색 엔진과 사이트 디렉터리 서비스를 제공했던 야후의 포털이었죠.

이렇게 야후의 검색엔진과 포털은 인터넷 상의 정보에 편리하게 접근토록 해주는 입구를 만들어 WWW를 대중화시키는데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또한 야후는 e메일, 콘텐츠/미디어, 커뮤니티, 통신, 전자상거래, 사업 정보 서비스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 ‘인터넷 비즈니스 영역을 확장 시킨 기업’이라는 명성을 얻습니다.

오늘날 야후는 전세계 24개국에 지역별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전세계적인 확장에도 성공합니다. 오늘날 매달 2억 명 이상의 방문객 수를 자랑하는 야후는 세계 최대의 인터넷 포털/미디어 사이트로, 그리고 인터넷에서 가장 성공적인 브랜드로 인정 받고 있습니다.